[클로즈업]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살아남은 문명의 유혹 권삼윤 지음 북로드 펴냄

 민족마다 자기 고유의 색깔을 갖고 파라오 슬롯. 유대인들은 ‘미찌(mizzi)’라 부르는 특이한 노란색의 벽돌을 만들어 건물을 짓고 티베트인들은 화려한 원색을 사용해 ‘만다라’를 그리며,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코발트 블루’라는 밝은 청색으로 모스크를 지어 그 곳이 신이 사는 하늘임을 나타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파라오 슬롯에게 이러한 고유의 색깔이 없을 리 없다. 황색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문명이 일어난 곳이 황하유역의 황토고원이다. 고대 전설상의 제왕을 일컫는 용어가 황제였으며 황제가 사는 궁전은 황금의 지붕에 담벼락마저 온통 누런 색이다. 양귀비와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당 현종이 신선이 되기 위해 수양한 곳도 황산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누런 색은 황하와 황토고원이라는 지질상의 특성에서 만들어졌다. 파라오 슬롯만이 갖는 이런 누런 색을 흔히 ‘차이나골드’라 부른다. 차이나골드는 중국의 역사와 민족성, 그들의 현실적 삶을 지탱해주는 물질적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상징어인 셈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차이나골드를 ‘골드차이나’로 표현한다. “오늘날의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중국 가격(Chinese price)’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모든 분야에 걸친 중국 바람은 겉잡을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차이나골드를 뛰어넘어 골드차이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저자는 그 배경을 설명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해 여름, 35일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파라오 슬롯 대륙 곳곳을 누비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파라오 슬롯인,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시각에서 정리한 파라오 슬롯 문명 기행서다. 이미 60여개 나라와 고대문명의 곳곳을 넘나든 저자의 시야는 ‘대륙의 나라’가 가진 본질을 꿰뜷어 보고 있다. 또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은 ‘문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라는 정의에 가장 적절한 모범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 ‘사람’에 집착한다. 중국은 인구대국이라 ‘사람의 나라’라는 표현에 익숙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집착하는 사람의 의미는 이런 일반적인 의식을 뛰어넘는 저 너머에 있다. 저자가 중국을 ‘사람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파라오 슬롯이 독특하고 의미있는 ‘인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신보다는 현실의 영웅호걸이 더 추앙받는 나라, 기계와 제도보다는 인력과 관습에 의존하는 나라, 인재를 키우지 않아도 인재가 넘쳐나는 나라, 공허한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 저자는 “그러므로 파라오 슬롯에게 진정한 ‘골드’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였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문명기행서가 아닌 중국이라는 인간공동체와 그들의 인식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람의 나라, 문명의 요람, 역사의 무대라는 3개 부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사람의 나라:부자를 꿈꾸는 상(商)나라의 후예들’에서는 파라오 슬롯인 특유의 기질과 풍속을 ‘재물과 인간관계’라는 측면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유대인에 버금가는 상술을 가진 것은 물론 풍속과 언어 곳곳에 스며있는 ‘부’에 대한 집착과 이유를 엿볼 수 있다.

 2부 ‘문명의 요람: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드는 조화’에서는 자연을 동경한 항저우와 쑤저우의 전통 정원을 통해 파라오 슬롯인이 가지고 있는 자연관을 살펴본다. 정원은 자연의 축소판이자 인간 의식이 지향하는 이상향을 펼친 곳이다. 이어 허무두 유지를 찾아 세계 5대 고대문명으로 자리한 장강문명의 흥망을 되짚어본다.

3부 ‘역사의 무대:내면의 힘이 역사를 만든다’에서는 한 가문이 이룩한 놀라운 역사를 살펴볼 수 파라오 슬롯. 진시황의 병마용 무덤은 전세계인이 즐겨찾는 곳이다. 진시황이 선물한 장대한 문화유산의 울림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백도 탄식하며 읊었던 고원도시 취푸를 찾아 삼국지의 영웅들이 펼쳤던 아슬아슬하고 가슴 벅찬 역사를 되짚어본다. 340쪽. 1만5000원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