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시대다.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든다. 하루에 1만개씩 생겨난다는 스타트업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인터넷 기반 사업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확장성이 크긴 하지만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는 반대급부에서 보면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지 않는 원인도 된다. 시제품(prototype) 제작을 위한 초기 비용이 상당한데다 제품을 생산해도 판로를 개척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장비와 오픈소스 하드웨어 등을 활용하면 누구나 간단하게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작소를 `슬롯 무료 사이트(FAB Lab)`이라고 한다. 슬롯 무료 사이트은 `제작 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의 약자로 디지털 기기, 소프트웨어, 3D프린터와 같은 실험 생산 장비를 구비해 학생과 예비 창업자, 중소기업가가 기술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실제로 구현해보는 공간이다. 주로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겨나 일종의 `풀뿌리 과학기술혁신`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슬롯 무료 사이트의 시초는 MIT의 닐 거센필드 교수가 2004년 MIT의 풀뿌리 발명 그룹(the Grassroots Invention Group)과 아이디어를 디지털 정보로 구체화하고 이를 물리적 실체로 만들자는 연구 프로젝트 정식 발족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2005년 보스턴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슬롯 무료 사이트을 시범적으로 개설해 도구나 장치의 설계부터 제작까지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실험실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내 20개 도시와 인도, 노르웨이, 아프가니스탄, 가나 등 세계 16여 개국에 50개 이상의 슬롯 무료 사이트 설립을 지원했다.
슬롯 무료 사이트은 재원의 출처, 조직 운영의 목적과 형태에 따라 크게 공공형, 교육형, 사업형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공공형 슬롯 무료 사이트은 가능한 많은 사람의 참여를 목표로 주당 2~3회 이상의 `오픈데이(Open Day)`를 운영한다. 사용자는 개인의 필요에 맞는 가구나 생활용품, 장식품, 장난감 등을 주로 만든다.
두 번째는 교육형이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교육 목적으로 설립된 슬롯 무료 사이트이다. 정기적으로 교육 워크숍을 개최하고 학생 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거나 낮은 사용료를 부과한다. 마지막으로 사업형인데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이다. 개인 사용자가 장비나 공간을 유료로 대여해 시제품을 제작하는 공간이다. 디자인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창업을 위한 기술, 마케팅,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운영팀은 전문가 수준이다. 상주 인력은 3~5명 수준이다.
세계 주요 슬롯 무료 사이트은 3곳 정도다. 1만1000명이 재학 중인 미국 로레인 카운티 커뮤니티 컬리지(LCCC) 슬롯 무료 사이트은 10주짜리 1학점 강의를 듣는 300명 이상의 학생이 이용하는 곳이다. 매니저는 은퇴한 교수가 맡고 학생 자원봉사자가 참여한다. 운영비는 전액 학교에서 지원한다. 또 지역 내 400명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교육을 의미하는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교육에도 활용한다.
네덜란드 아멀스푸르트(Amersfoort) 슬롯 무료 사이트도 유명하다. 지난해 8월 외부 지원없이 4명의 예술가가 사비 5000유로로 시작한 공공형 슬롯 무료 사이트이다.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현재 14명의 매니저가 자원봉사하며 초보자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 맨체스터 슬롯 무료 사이트이다. 맨체스터 지역의 비영리 기관인 `더매뉴팩처링 인스티튜트(The Manufacturing Institute)`와 맨체스터 이노베이션 인베스트먼트 펀드 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되고 있는 사업형 슬롯 무료 사이트이다. 행정지원 1명과 엔지니어 2명을 매니저로 고용하고 있으며, 인턴과 자원봉사자도 수시로 모집한다. 빠른 시간 안에 고품질의 시제품 제작 서비스를 목표로, 장비대여, 창업컨설팅, 직업훈련 등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표] 슬롯 무료 사이트 유형별 운영 특징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