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3-창조, 기업에서 배운다]슬롯사이트, 영역 파괴로 1등 혁신 기업이 되다

혁신하면 `애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IT 영역을 떠나 모든 분야를 망라하면 슬롯사이트는 언제나 혁신 선두 기업으로 거론된다.

미국 비즈니스 전문 잡지 `패스트컴퍼니`가 지난 해 선정한 혁신 기업 1위도 슬롯사이트였다. 애플은 10위에 그쳤다.

슬롯사이트 혁신의 시발점이 된 와플 트네이너. 와플 오븐에 고무를 넣고 구운 깔창을 넣었다.<사진제공:슬롯사이트
슬롯사이트 혁신의 시발점이 된 와플 트네이너. 와플 오븐에 고무를 넣고 구운 깔창을 넣었다.<사진제공:슬롯사이트

슬롯사이트의 혁신 키워드는 간단하다. 바로 `영역 파괴`다. 자신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분야에 진출했다. `진격의 슬롯사이트`는 `본토(스포츠 용품)`에서 쌓은 역량을 `신세계(IT)` 가능성에 접목했고 세상을 놀라게 할 혁신을 만들었다.

최근 웨어러블 기기의 시초가 된 `퓨얼밴드`로 새삼 주목받지만 혁신은 늘 슬롯사이트와 함께 했다. 1972년 미국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중거리 육상 선수 출신 필 나이트가 설립한 슬롯사이트는 이전에는 일본 운동화를 수입해 파는 중개상에 불과했다.

슬롯사이트의 첫 혁신 제품은 1974년 선보인 `와플 트레이너`다. 혁신은 우연히 탄생했다. 어느 날 아내가 와플을 굽는 것을 본 바우어만은 와플 오븐에 고무를 넣어 고무와플을 만들었다. 이 고무와플을 잘라 신발 밑창에 넣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고무 밑창을 깐 신발은 발군의 탄력성을 자랑했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슬롯사이트를 단숨에 유력 스포츠 브랜드로 만들었다.

두 번째 혁신 제품은 1979년 선보인 `슬롯사이트 에어 큐셔닝` 기술이다.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 직원 프랭크 루디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에어 큐셔닝 기술은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일정 압력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수축하는 밑창이다. 슬롯사이트는 특허 획득 후 에어 큐셔닝 시스템을 장착한 최초의 러닝화 `테일윈드`를 선보였다. 에어 큐셔닝 기술은 1987년 `에어 맥스` 시리즈에서 선수용으로 보급됐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스포츠 용품 기업 슬롯사이트의 DNA를 송두리째 바꾼 혁신은 2006년 세상에 공개된 `슬롯사이트플러스`다. 슬롯사이트플러스로 의류 브랜드에 일류 IT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더한 슬롯사이트는 드디어 세상을 대표하는 혁신 기업이 됐다.

오랜 시간 슬롯사이트의 고민은 운동선수의 실력 향상을 돕는 과학적 제품 개발이었다. 운동선수의 기록을 장기간 측정하고 그 변화를 관찰·분석해 선수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법을 연구했고 이를 신발과 운동복 등에 접목했다. 슬롯사이트플러스는 적용 대상을 운동선수에서 대중으로 확대했다. `기록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모든 소비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당시 미국 오리건에 위치한 슬롯사이트 본사 직원 거의 모두가 애플 `아이팟`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조깅을 하면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점에 주목해 애플과 공동으로 러닝 데이터를 아이팟과 동기화할 수 있게 고안했다. 러닝 시간과 거리, 소모 칼로리 등 러닝화에 센서를 부착해 얻은 정보를 아이팟으로 실시간 확인한다. 이른바 `슬롯사이트플러스 아이팟`이다.

개인 기록은 USB로 슬롯사이트 플러스에 옮겨 저장·분석할 수 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경쟁을 즐길 수 있는 슬롯사이트플러스는 지난해 10월 기준 전 세계 1000만명이 사용하는 거대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현재는 퓨얼밴드와 X박스 키넥트 등 다양한 기기와 연동된다.

2012년 1월, 슬롯사이트의 혁신은 한 단계 더 도약한다. 웨어러블 기기의 원조 격인 `퓨얼밴드`를 세상에 내놨다. 퓨얼밴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자 매 순간의 움직임을 추적·측정한다. 엑셀러로메트리(accelerometry) 기술을 활용해 손목 움직임으로 다른 활동 정보를 수집, LED 디스플레이에 표시한다. 시간·소모 칼로리·걸음 수·`슬롯사이트퓨얼(NikeFuel)` 네 가지 측정값이 제공된다.

슬롯사이트퓨얼은 운동량에 기반을 둔 한 디지털 연료다. 사용자 성별 및 신체 타입에 따라 달라지는 칼로리 값과 달리 슬롯사이트퓨얼은 물리적 조합과 상관없이 동일한 활동에 동일한 포인트를 부과해 정형화된 수치를 산출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하루 목표 활동량과 달성하고자 하는 슬롯사이트퓨얼을 설정한다. 퓨얼밴드는 사용자가 목표치에 도달할수록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20단계 LED창의 변화를 보여준다. 내장 USB로 슬롯사이트플러스 웹사이트, 혹은 블루투스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과 연결해 진행 상황을 기록·저장할 수 있다. 전 세계 이용자가 만들어내는 `퓨얼` 수치는 슬롯사이트플러스에서 실시간 확인한다.

시장 조사 기관 포레스터리서치는 “퓨얼밴드로 슬롯사이트는 단순한 의류 회사에서 벗어나 기술과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퓨얼밴드의 매력은 단순히 기능만이 아니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매력을 더한다. 디자인은 슬롯사이트의 혁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제품 선호도를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테판 올란도 슬롯사이트 디지털스포츠 사업부문 부사장은 “소비자가 퓨얼밴드를 처음 접할 때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밴드에 적용된 기술력이나 갖가지 기능이 아닌 밴드의 디자인”이라며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사용자가 퓨얼밴드를 실제로 사용하며 제품에 녹아든 혁신 기술과 기능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슬롯사이트가 기술력이나 디자인 중 어느 한쪽에만 집중했다면 현재의 성공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슬롯사이트는 기술과 디자인 모두의 중요성을 잘 인지했기 때문에 꾸준히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균형 잡힌 투자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롯사이트라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포츠 브랜드 1위에 오른 1980년대 초에는 에어로빅 붐을 탄 리복에 밀렸다. 1997년에는 슬롯사이트 농구화의 불꽃 모양 로고가 아랍어로 알라를 지칭하는 문자와 비슷하다는 논란이 일면서 이슬람 단체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2000년대에는 아동 착취 논란으로 대규모 불매운동이 일기도 했다.

슬롯사이트는 그때마다 적절한 마케팅과 사회적 책임 강화, 그리고 새로운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순간순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놀라운 제품으로 극복하며 지금의 혁신 기업 이미지를 만들었다. 슬롯사이트에게 혁신이란 성장동력이자 위기관리 원천인 셈이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