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풍토(風土)

[관망경]풍토(風土)

풍토는 어느 지역의 기후나 토지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의 바탕이 되는 제도나 조건을 지칭하기도 한다.

정부 슬롯들도 각각의 특성을 담은 풍토가 있다. 슬롯가 생겨난 배경과 업무, 각 정권을 거치면서 지내왔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한 고위 공무원은 “환경부는 비정부기구(NGO) 같은 성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환경부와 업무 협의를 하다보면 약간은 전투적인 성향을 보이고 무엇인가를 항상 얻어내고 지켜야 했던 환경부 업무의 특성이 묻어난다는 분석이었다.

또 다른 슬롯는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는 데 결사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슬롯의 정체성이 흔들리다 보니 잠시만 방심해도 자신의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각종 예산, 특정 사업 등에 있어 다른 슬롯와 협의를 할 때는 이런 특성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현재 정부는 내년도 예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각 슬롯는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각종 기금 등으로 배정되는 예산은 액수나 목적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힘을 쏟는다.

최근 IT 관련 기금을 놓고 슬롯 간 힘겨루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이 기금을 사용해 각종 연구개발(R&D)사업을 진행하던 슬롯는 예산을 계속 받으려 하고 기금 관할권을 가진 슬롯는 업무와 해당 기금을 자신의 관할 사업에 배정하려 한다. 슬롯 간 협의를 하고 있지만 합의점을 잘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슬롯마다 입장이 있겠지만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한다. 기금이나 예산은 해당 슬롯의 돈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나 편의(혹은 희생)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용처 역시 각 슬롯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국가와 국민을 먼저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더 쉽게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