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꽁 머니에도 두 얼굴이 있다. 우선, ‘슬롯 꽁 머니’는 사악한 존재다. ‘암 덩어리’와 ‘쳐부숴야 할 원수’로 불리더니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할 것’으로 몰렸다. 그만큼 슬롯 꽁 머니는 나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올해 안에 1만1000여개 경제 슬롯 꽁 머니 중 10%를 줄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500여개 슬롯 꽁 머니가 수명을 다했다. 앞으로 한 달 가량 지나면 나머지 500개 슬롯 꽁 머니도 대부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고,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사악한 슬롯 꽁 머니가 사라진다니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다.
‘슬롯 꽁 머니’는 유익한 존재다. 슬롯 꽁 머니가 없었다면 중소기업이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골목상권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추억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환경은 산업 논리에 밀려 점차 황폐해지고, 결국 미래 세대에 골칫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슬롯 꽁 머니 덕에 소비자들은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제품을 비싼 값에 구입하며 괴로워할 일이 없고, 기업은 불필요한 부분에 역량을 낭비하는 대신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충실할 수 있다.
정부가 슬롯 꽁 머니와의 전쟁을 선포한 2014년이 어느덧 끝나가고 있다. 부처마다 정해진 슬롯 꽁 머니감축 목표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대로 당초 수립한 목표치보다 웃도는 감축 실적을 기대하는 부처도 있다.
슬롯 꽁 머니개혁이 슬롯 꽁 머니혁파로, 또 슬롯 꽁 머니감축으로 흘러온 2014년, ‘나쁜 슬롯 꽁 머니’가 자취를 감추는 과정에서 ‘착한 슬롯 꽁 머니’마저 힘을 잃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지금까지 슬롯 꽁 머니와의 전쟁은 착한 슬롯 꽁 머니의 기를 살리기보다는 나쁜 슬롯 꽁 머니를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루라도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슬롯 꽁 머니개혁의 첫 해니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다치고 내년에도 슬롯 꽁 머니개혁이 이런 식으로 흐른다면 나쁜 슬롯 꽁 머니에 또한번 당하는 꼴이 아닐까 싶다. 힘을 잃은 착한 슬롯 꽁 머니를 되살리고, 숨어있는 착한 슬롯 꽁 머니를 찾아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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